태초 부터 살아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를 겸손함으로 아멘!!

작성자
test cdcsm1
작성일
2018-01-13 18:40
조회
233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행7:2-

같은 역사를 살더라도 그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현재를 해석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도 달라집니다. 스데반은 이스라엘의 긴 역사를 나열하며 유대인들과 나에게 하고 싶은 메세지가 무엇인지 묵상해 봅시다!!
첫째, 스데반은 자신을 향한 거짓 고소를 듣고, 자기 자신을 변호하는 대신에 복음을 변호하는 기회로 삼습니다. 성령과 지혜의 사람 스데반은 성령이 예비하신 일을 따라 구속의 역사 가운데 하나님이 얼마나 신실하셨고, 그에 반해 이스라엘은 얼마나 일관되게 하나님께 불순종했는지를 설명합니다. 이방의 땅에서 아브라함을 친히 부르시고 언약을 체결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아와 부르셨습니다. 그가 우르에 있을 때, 그리고 하란에 있을 때, 즉 그가 이방 땅에 있을 때 거룩하신 하나님이 그를 불러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거룩한 사람이 따로 없고 거룩한 장소도 따로 없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은혜로 다가가셨기에 역사는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도 언제 어디서든지 복음을 변호하기 위해 늘 말씀에 젖어 있고 성력에 충만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둘째, 신실하신 하나님과 신실하지 않은 유대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이방 땅 메소포타미아에 있을 때 나타난 소명을 주셨고, 하란에서 머물러버린 아브라함을 다시 불러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다. 또 할례 언약을 통해 자손을 약속하시고는 그 약속대로 이삭과 야곱과 열두 아들을 차례로 주셨습니다. 늘 하나님이 주도권을 가지고 역사를 꾸려 오셨습니다. 스데반은 유대인들이 죽인 이 예수가 바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려고 하나님이 보내신 종인데, 이스라엘이 거역했다고 말하였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과 신실하지 않은 유대인들을 대조합니다.

셋째, 조상들의 탐욕과 시기를 통해서도 하나님은 언약의 역사를 성취하셨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시기하여 요셉을 애굽에 팔아넘겼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은총과 지혜를 주셔서 그를 애굽의 통치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통해 야곱의 칠십오 명의 가족들이 기근을 피해 안전하게 애굽 땅에 정착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곳에서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자손을 주겠다는 약속을 성취하셨습니다. 예수도 유대인들의 시기 때문에 죽임을 당했지만, 하나님은 도리어 그 죽음을 통해 하나님 나라 백성을 창조하셨습니다.

왜 스데반이 구약 역사를 길게 나열하는가? 스데반의 답변은 일차적으로 거짓 증언(행6:11, 13-14)에 대한 자기변호인 것이 맞지만, 그의 연설에는 두 가지 중요한 주제가 얽혀 있다. 곧 율법과 성전이다. 첫째, 스데반은 자신이 율법을 거슬러 말하지 않았다고 강변한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정작 유대인들이 말씀을 어기고 우상숭배를 했으며,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들을 죽이고 불순종했다. 둘째,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부터 옮겨 다니는 성막을 가지고 있었고 나중에는 솔로몬 성전이 있었지만, 성전 자체를 지나치게 중요하게 여긴 나머지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했다. 오히려 우상숭배에 빠졌고(행7:39-43), 하나님은 성전에만 거하시는 것으로 잘못 생각했다(행7:44-50).

사랑하는 창대 가족 여러분! 참 신앙은 지금까지 살아야 역사하는 하나님를 알고 겸손히 메시야를 영접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모든 주권을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맡기는고, 하나님 나라 안에서 내 삶의 역할과 배역을 찾아 충성하는 것입니다!! 스데반의 1차 청중은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자손들이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내가 복음을 가지진 불순종과 우상숭배를 일 삼는 어리석을 믿음의 소유자라고 고발 합니다!! 혹시 나의 믿음도 자칭 살아다 하난 죽은 믿음인지 살펴 봅시다!! 예수님을 마음으로 영접하고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의 가르침과 인도하심 따라 아멘 하며 십자가의 길을 걸어 가는 복음을 전하는 삶이 되시길 축복합니다!!!